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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드라마

D454) 꿈 (Dreams, 1990) - 재고 없음

by 비디오수집가 2020.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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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Dreams, 1990)

 

 

 

수준있는 작품들로 전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은

감독이 꾸었던 8가지 꿈들을 엮은 옴니버스 드라마 영화다.

감독의 꿈세계를 살짝 들여다보자!

 

영화의 첫 챕터이다.​

잠깐 내렸다가 그치는 여우비 사이로,

시집 가는 여우를 본 소년의 이야기.

긴 혼례 행렬이 숲속에서 빗줄기와 함께 펼쳐지는데,

그 상징적 의미를 떠나서 우선 숭고하다.

이를 지켜보는 소년의 순수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모습은,

마치 낙원의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금기를 깬 소년에게 앞으로 불행이 시작되는 것인가?

아니다, 감독은 무지개 아래 색색 깔의 꽃밭에 소년을 두어

진짜 유토피아란 금기를 깸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 장에서도 소년의 순수함과 동심을 복숭아 나무 밭에서 강조한다.

소년을 다그치는 복숭아 정령들의 기묘한 춤사위와 풍악은

자연에 대한 감독의 예찬과도 같다.

소년은 정령이 사라진 이후 복숭아 꽃 환영을 보는데,

꿈 속이지만, 소년의 환영 이후, 복숭아 나무 밭에는 잘린 복숭아 나무들만 남게 된다.

하지만 한 그루의 복숭아 나무를 남겨둠으로써,

희망과 아름다움의 여지를 역시 함께 남겨둔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면,

위 스틸 컷에서 보듯이 복숭아 나무 밭을 위 아래의 계급 구조로도 볼 수 있다.

위 쪽에 자리한 복숭아 정령 대왕과 제일 아래 서 있는 소년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나 있는데, 이는 마치 계층 사다리를 보는 느낌이다.

이를 통해, 소년이 어른이 되면 순수함이 점점 퇴색해

환영 이후 밑동만 남은 복숭아 나무처럼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때, 한 그루의 복숭아 나무는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순수함, 희망이다.

 

세 번째 장. 소년에서 군인이 된 감독이 눈보라를 휘젓는다.

하얀 눈보라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은 감독은 눈의 정령과 만난다.

이후 동료들을 깨우고 기지를 찾아 열심히 전진한다.

성장하면서 인간이 한 두번 쯤 겪을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는 챕터인데,

눈의 정령이 등장하는 것은 죽기 직전 대부분의 남성이 가장 그리워하는 존재인

어머니를 상기시키기는 이치와도 비슷하다.

외에도 생존 본능 및 의지, 전우애 같은 내용들이 강조되는 듯 하다.

 

네 번째 장에서도 세 번째 장과 비슷한 부분들이 강조된다.

터널을 지나쳐 온 감독이 전쟁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의 유령과 마주하는 내용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이 유령들에게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한 유령들이 다시 터널로 돌아감으로써,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면서도

하나로 합치는 감독의 사후관 또한 엿볼 수 있다.

말미에 개를 등장시키는데, 일반적으로 개가 유령을 보고 짖는다는 점에서,

감독 역시 유령일 수 있다는 잔인한(?) 생각을 해본다.

동시에, 개가 죽은 패잔병이 환생해 나타난 모습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실 이 부분이 이승과 저승이 함께 놓여있다고 생각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장이 끝난 후에도 사색을 이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참 흥미롭다. 

 

다섯 번째 장. 갤러리에서 고흐의 그림들을 보던 감독이

고흐의 그림 세계로 빨려들어가면서 겪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독이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나본데, 시대의 천재이자 불운아 고흐는,

감독의 꿈 속에서는 제법 코믹스럽고, 괴짜처럼 그려진다.

자연 그 자체에 숨겨진 장광이 들어있다는 고흐의 말은,

감독의 자연친화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모든 미장센의 요소들을 색색 깔로 칠했을 정도로

미학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으로 인해,

다섯 번째 장이야말로 정말 눈이 즐거워 눈물이 나올 정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검정 까마귀들은,

밀밭을 등지고 가는 허수아비 고흐의 자리를 맴도는

인간의 탐욕과 자연을 헤치려는, 모든 것을 검게 흑칠할 재앙과 종말처럼 보였다.

밀밭을 지키는 허수아비 고흐마저 떠나간 지금,

게다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

도대체 누가 자연의 소중함을 지닌 밀밭을 지키냐는 말인가!

 

여섯 번째 장. 감독의 예지몽이 발현된 원자력 발전소 폭발 에피소드.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피난 가는 와중에,

아이를 지키는 어머니와 남아 거대한 화산재와 맞서는 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생명을 억압하는 기계 문명에 대한 강한 비판이 암시적으로 나타나는 에피소드다. 

조금씩 종말론적인 시각으로 향하는 이 에피소드에서,

붉게 뒤덮인 영상 이미지는

지옥 불구덩이를 연상시킨다.

 

일곱 번째 장, 이제는 완전히 폐허가 된 듯하다.

모든 것이 잿더미이고, 그 위를 감독이 불안하게 거닌다.

지옥 같은 곳에서 만난 괴상한 이방인은 감독을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으로 이끈다.

허나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기형적인 모습으로든 꽃이 피어있다는 부분이다.

알록달록, 노란 꽃을 보고 있자니,

감독의 종말론이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종말론이 된 듯하여

그렇게 안타깝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마지막 스틸 컷은 파졸리니 감독의

'켄터베리 이야기 (I racconti di Canterbury, 1972)'의 지옥 장면과 오버랩된다.

두 작품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하나가 다행이나마 희망적이고,

하나가 코믹하다는 측면에서 두 감독의 지옥 모두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챕터. 역시나 감독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도는 윤회의 상징 물레방아와 함께,

생명의 근원인 물, 100세가 넘은 태평한 노인까지 등장한다.

​감독이 말하는 유토피아, 진정한 꿈의 공간이 바로 이곳, 물레방아 마을인 듯 다.

아이의 모습에서 다 큰 감독이 이 공간에 있는 것도 흥미롭다.

첫 번째 장과 대비가 좀 되는데,

첫 번째 장에서 내리던 여우비와 마지막 장의 물레방아 강은

결국 자연과 생명의 승리를 예감한다.

또한 여우의 시집 행렬과 노인의 장례 행렬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끈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는다.

이 아름다운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감독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 지가 상상이 간다.

 

난 사실 이 영화의 장면들과 시퀀스가 어떤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아직 전문 자료를 찾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처럼 연령층과 국적을 아우르는 영화는

그러한 전문 지식없이 바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 흡수된다.

뛰어난 색감과 차분하고 관조적인 카메라 응시는 말 할 것도 없이,

과감한 인터커트와 이미지 실험, 스토리 실험 등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에너지와 꿈이 한데 뭉친 작품이다.

감독이 이처럼 공을 들여 자신의 세계를 내보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도 무척 뛰어나고 훌륭하다.

조만간 소개할 날을 기다리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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