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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드라마

D520)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1993) - 재고 없음

by 비디오수집가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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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1993)

 

 

  1.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데릭 저먼 감독이 재구성한 작품. 비트겐슈타인의 어린 시절 관심사부터 그가 성장해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본격적인 철학적 논제들을 펼치는 과정,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이탈리아 군의 포로로 있으면서 완성한 '논리 철학 논고'의 집필 과정,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난폭하게 변모하고, 다시 캠브리지 대학교로 복귀해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고자 했던 모습 등이 담겨있다.

  2. 언어 철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국어 시간에 한 번 쯤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식의 수업을 받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 규명에 힘써온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엿보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언어를 비판하고, 이로써 명제를 무너뜨리는 식의 작업은 곧 눈에 보이는 것들(확실성)을 함께 무너뜨리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데릭 저먼 감독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러한 복잡한 사고관을 제법 스타일리쉬하게 가시화했다.

  3. 첫 번째로 불 꺼진 조명 안에 인물들만 세우는 식의 인위적인 연극적 세팅을 시도했는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시공간을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된다. 시공간에 대한 단서는 보이는 것(색)과 들리는 것(언어)을 통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예: 러시아에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동선은 오로지 러시아어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언어로서 믿을 것이냐, 보이는 것을 통해 믿을 것이냐, 같은 문제들에 직면할 수 있는 미장센이다. 한 개인의 언어, 즉 두뇌를 통해 형성되는 사고관 또는 이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와 같은 협소한 연극적 세팅은 나름 수긍이 간다. 이에 반해 보이는 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고관 또한 무시하지 못하기에 컬러풀한 옷과 소품 등을 군데군데 배치한 감독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러한 원색적인 색깔들은 눈으로 봤을 때의 직관적 수용, 어떻게 보면 본능과도 밀접해있다. 언어를 통한 사고관 정립이 이성적인 것에 반해, 상당히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수용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왔다.

  4. 이러한 두 가지 형이상학적 개념의 대립만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동성애 기질 역시 이러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아리송하게 묘사된다. 완벽주의자였던 비트겐슈타인 스스로도 이러한 성향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영화에서 말한다. 즉, 동성애 기질은 본인이 쌓아 온 업적에 반하는 직관적인 사고, 보이는 것을 통해 형성되는 사고관인 셈이다. 데릭 저먼 감독은 이처럼 비트겐슈타인의 업적에 비례하는 고뇌를 영화적 스타일(언어 vs 색)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나름 성공한다.

  5. 그럼에도 아쉬운 구석은 있다. 보이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세팅이 조금은 과장되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음악과 미술로 대비되는 두 사고관 형성 도구의 대립이 과연 효과적으로 비교/대조 되었는지. 히틀러와 전쟁 관련 부분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어떤 식으로 비판되고 용인될 수 있는지, 이러한 고민들에 관한 흔적이 조금은 덜 두드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순수했고 또, 모호했던 시절의 어린 비트겐슈타인을 끝까지 화자로 물고 늘어진 점은 감탄스럽다. 결국 어린 비트겐슈타인을 통해 어릴 적 경험하고 보고 듣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비트겐슈타인이 꼬맹이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애를 먹는 장면을 생각한다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여하튼 왜 이 작품이 여전히 수작이고, 데릭 저먼이 왜 천재 감독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1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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